수필

그림은 행복이다.

청계 양태석 2013. 9. 4. 14:04

그림은 행복이다. 누구나 좋은 그림을 보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화를 감상하는 행복을 누리기위해서 유명미술관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명화를 만나는 것은 영혼의 행복까지 누리기 위해서이다. 모든 명화는 감상자의 감흥을 일으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사람들의 그림보는 수준에 따라 행복지수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 보는 안목을 높여 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나는 지방에 있을 때 어느 대가의 화조화를 감상하면서 크게 행복했던 일이 있다. 그 그림이 지금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때 내가 보는 그림을 보는 수준이 당시의 눈높이로 봤기 때문에 마음에 감흥을 받은 것이다. 나는 지금도 수준의 차원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수준으로 감상하는 것을 지금의 행복으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그림은 그 시대의 기록이며 조형적이고 시각적인 예술이다. 따라서 지금 그린 작품이 현재의 기록이며 후세에 기록유산이 되는 것이다. 지난 세월동안 많은 예술인들이 있었지만 후인의 행복과 감동을 주는 화가는 흔하지 않다. 수준이 낮을 때는 많은 그림들이 모두 명화로 보이지만 수준이 높아지고 나면 그중에 시대적 감각과 회화성이 충실한지를 가늠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감상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그림을 감상하려면 상응한 노력이 있어야한다. 절대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그림을 실제로 실물을 감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책자나 영상을 통해서 보고 명화감상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전문서적을 통해서 감상법을 배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5~60년대에는 좋은 책이나 영상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여 그림 보는 수준을 높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요즈음은 모든 여건이 좋아졌고 누구나 그림 보는 법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성숙되어 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보는 수준이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림은 같은 작품이라도 관자의 수준에 따라 매우 다른 평을 하기 때문이다. 명작이라 해도 한 사람의 작품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호평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수준과 시대적인 예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행복하려면 그림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림을 사랑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옆에 있어도 보고 싶고 멀리 있으면 더욱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옆에 있어도 보고 또 보는 것이 즐거우며 좋은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요즈음은 아트테라피를 통해서 정신과 치료를 하는 마당에 행복은 그림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은 영혼을 살찌게 하는 영양제로 감상하는 재미와 재산증식에도 한 몫 하면서 일거양득이라 하겠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하면 밤중에도 일어나 감상한다는 사람이 많다. 그림에 미치면 사람에 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천 점을 모아놓고 번갈아 가면서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한남동에 어느 부자는 무려 8만점을 모아놓고 별세했다. 참으로 대단한 숫자이며 병적인 수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건물계단에도 그림이며 부엌 싱크대 위에도 그림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루에 한 차씩 살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광적인 수집은 피해야한다. 그러나 재력이 있고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은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정신적으로 행복을 도우는 길이다.

그림을 수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진실로 그림이 좋아서 모으는 사람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하는 사람이 있으며 순전히 감상하기위해서 모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위의 모든 목적을 가지고 수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림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행복해지고 영혼의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좋은 그림을 만나는 날이 즐거운 날이 될 것이며 자기가 소장하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