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 이인문(李寅文)은 호(號)가 말해주듯 오래된 소나무와 물이 흐르는 것을 보는 도인으로, 호를 해석해보면 온갖 풍상을 겪은 소나무의 무게로 물이 흐르는 유연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세상을 관찰하는 외길인생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문욱(文郁), 유춘(有春), 자연옹(紫煙翁) 이 있다.
이인문은 1745~1821년 조선말기화가이며 도화서 화원으로 첨절제사를 지냈다. 김홍도와 동갑내기로 당대 명가들인 강세황, 신위, 남공철, 박제가 등과 교유했으며 산수, 영모, 도석인물 등 다양한 분야의 회화를 소화했다. 특히 산수화에 능해서 43cmX856cm의 대작인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특유의 작품으로 후세에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남화풍의 전통산수화나 진경산수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독창성을 창안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 화단의 명인으로 김홍도, 심사정, 최북 등 유사한 화풍이 유행하였고 서로의 우위를 선점하기위해서 노력 했다. 서로 자기들만의 개성에 따라 사회적 평판이 있을 뿐 각기 개성적 작품을 남김으로서 큰 업적을 남긴 역사에 빛나는 화가로 남을 것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전통산수화는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의 공간이며 사유의 산물이다. 작가는 상상의 공간을 무한의 영역으로 자기특유의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현실을 떠나 선경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환희를 느끼고 창작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강산무진도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 규모가 대단하며 기기묘묘한 산형이나 괴석군(怪石群), 백여 척의 선박(船舶)이 유유히 지나가는 장강의 풍경, 자연 에너지를 이용하는 물레방아, 크고 작은 마을이며 성각과 누각들 상상을 총 동원해서 그린 시대의 기록이다. 특이한 것은 높은 절벽에 관광지를 형성하고 필요한 물자를 도르래를 이용해서 수송하는 모습은 시대를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생활환경이 엿보이는 풍물을 겸한 산수화로서 눈여겨볼 것은 두 바퀴가 달린 수레를 그린 것이다. 화가들이 시대를 앞선 그림을 그림으로서 문화발전에기여하고 그 상상력이 세기를 초월함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강산무진도는 당시 인간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모두 묘사함으로서 시대상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풍속과 산수의 합일을 엿보이게 하는 예술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앞선 문명을 향해 다양한 기구와 생활 모습을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부벽 준과 미점 준 등 여러 가지 준을 적격적소에 이용하고 아주 작은 사람까지도 꼼꼼하게 그렸고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을 그려 감상자의 상상을 초월하게 하였다.
강산무진도는 대작이며 그림 한 장으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작가는 추종을 불허하는 명작을 한 점을 남김으로서 자가의 소임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인문은 대단히 역량 있는 작가이지만 소탈한 성격과 끈질긴 작가정신으로 대작을 남긴 것은 주위 대가들의 경쟁적 상황을 잘 극복하여 회화적 현대미를 추구하는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그는 장수함으로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작가로서의 영광을 얻었다. 이인문은 김홍도의 그늘에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나 김홍도가 60세에 세상을 떠나니 동갑친구를 잃은 것도 슬픈 일이지만 작가로서의 시대적 사명감 같은 호기로 다시 새로운 창작을 하는데 충실했다. 그래서 남긴 강상무진도는 우리화단의 사정으로 봐서 대단한 역작이며 대작이다. 이인문은 그로인해서 화계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큰 대가로 인정받았다.
이인문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그렸다.
조개가 입을 벌리자 새가 나타나 살을 쪼았다. 조개는 입을 아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새가 조개에게 “오늘 내일 비가 안 오면 너는 말라죽게 되어있다.” 그러자 조개는 새에게 “오늘 내일 너는 못 빠져 나가면 굶어 죽는다.” 조개와 새가 서로 다투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부가 두 마리를 한꺼번에 얻었다는 중국의 우언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말이다. 이 고사를 이인문이 해학적으로 그린 것이다.
강가에서 새와 조개가 서로 다투고 있는 사이 어부가 지나가다가 횡재를 하는 모습은 재미있는 그림이다. 단원과 재주를 가리기어려울정도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으나 친구인 단원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이인문이 세상의 이목을 얻은 것이다. 이인문은 산수를 주로 그렸으나 도석인물을 많이 그리고 화조, 영모, 신선도 등을 즐겨 그렸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의 운명 (0) | 2013.05.23 |
---|---|
소정 변관식의 인생역전 (0) | 2013.05.23 |
삶과 죽음의 거리 (0) | 2013.05.23 |
착각(錯覺) (0) | 2013.05.23 |
직업화가와 일반취미화가의 경쟁-양태석 (0) | 201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