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다. ?우리 집은 효자 집안이다. 그러니 부모 말을 거역하거나 부모 속을 썩이면 불효자가 된다. 불효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라.?하셨다. 그리고 조금만 말을 듣지 않으면 가문을 생각해서 행동하라는 경고를 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효도를 하는 것만이 지상 명령으로 여겨졌으며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면 효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5대조 할아버님 덕암 양정악 [德巖 梁挺岳]공께서는 지극한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 동몽교관으로 중직을 받으시고 홍문을 지어 타의 귀감이 되도록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는 효자이시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늘 문중의 누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를 하신 것이다. 대대로 효도를 가문의 근본으로 알고 가풍을 이어오고 있다. 자식들에게도 부모님에게서 배운 효도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따라서 자식들도 부모 말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문의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효도는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다. 그러나 몸에 배이면 효도 같이 쉬운 일도 없다. 효도를 해야 된다는 중압감이 있으면 효도하기가 힘이 들것이나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부모에게 서운하지 않도록 하면 쉬운 효도가 될 것이다. 부모에게 호의호식을 시켜 드리고 봉양을 잘한다고 효도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흡족하게 해 드리며 가문과 개인에 명예를 높여 타에 모범이 되도록 하여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부모 자식 간 문제를 벗어나 은사나 지우 관계를 친화해서 주변을 화목하게 하고 친인척간에도 불화가 없도록 하여야 비로소 효도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의 효도를 한다고 했으나 지나고 보니 후회스러운 일이 많았다. 내 나이 12살 되던 해에 아버님께서 세상을 뜨시고 어머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어머니께서는 유달리 엄하시고 가정교육에 충실하신 어른이셨다. 그래서 자식이 감히 부모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고 나쁜 일은 더욱 할 수 없었다. 혹 친구들이 부모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어린 마음에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어머님께 잘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곤 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효행편[孝行篇]에 보면 태공이 말하기를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 할 것이나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를 하리요?? 하셨다. 그래서 효순한 사람은 효순한 아들을 낳으며 오역한 사람은 오역한 아들을 낳는다. 는 말도 있다. 그러니 현재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도 머지않아 부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효도한다면 자기도 효도를 받을 것이다. 공자가 말하시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면 먼 곳에 외유하지도 않으며 부득이 외유 할일이 있으면 반드시 가는 곳을 알리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옛날 성현들이 하신 말씀은 지금도 지키면 사회생활에 득이 될 것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불효를 하게 된 것 같다. 진정한 효도를 하려면 부모 옆에서 직접 모셔야 하는데 고향에 형님이 계시는 관계로 천리 타향에서 고단한 생활을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가정 행사가 있을 때만 고향을 찾았으니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른다. 따라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많은 자식들이 본의 아니게 불효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팔순이 가까워 치매라는 무서운 병마에 시달리고 계셨다. 고향의 형님께서 어머님을 모시기에 얼마나 큰 고생을 하실까? 하는 생각에 형님의 양해를 얻어 서울로 직접 모시고 왔다. 몸이 무거우신 관계로 한번 넘어지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대소변 시중 때문에 옆에서 자야 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치매라도 정신이 맑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밤새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었다. 직접 모셔 보고서야 형님께서 얼마나 고생 하셨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동생이 일주일을 모시고 도저히 모실 수 없다고 해서 다시 모셔 온 일이 있다.
일주일 모시기도 어려운데 수십 년을 모신 형님께서 그 효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출근하면서 ?어머니 일찍 들어오겠습니다.?하고 화실에 나가 일을 하다 보니 조금 늦게 들어왔다. 일찍 오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늦게 왔다고 화가 나셨다. 신문지를 구겨서 전기 불에 대고 불을 붙여서 집을 불 질러 버린다고 야단이셨다. 형광 등불에 불이 붙을 것으로 생각하시는 어머님을 바라보는 심정이 몹시 괴로웠다. 어머니는 성질이 불같은 분이고 약속을 어기면 반드시 혼을 내는 분이다. 도시의 가옥이라 문을 닫으면 밖으로 나가는 문이 구별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나를 가두어 두려고 집을 이렇게 지어 가지고 못나가게 만들었지??하시며 화를 내시기도 했다. 혼자 일어서시다가 넘어지실까 염려되어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계시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일 년도 채 못 되어 세상을 떠나시니 애통하고 서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평소에 어머니께서는 인심이 좋으시고 경우에 없는 일은 하지 않으시고 정직하게 사셨으니 극락왕생 하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상 버리신 지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극진한 효도를 하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진주에 있을 때 어머님이 용돈을 아껴서 구해 주신 부적[符籍] 한 점을 30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하고 수첩에 담고 다닌다. 가끔 부적을 볼 때마다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를 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시던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머님 극락왕생 하시고 후생에 다시 태어나도 모자간의 인연이 되기를 빌고 또 빌면서 꿈속에서라도 인자하신 모습으로 뵈옵기를 진실로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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