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설 연휴를 고향에서 보내고 서울에 도착해서 전철로 귀가했다. 밤 10시가 지난 시간이라 승객들이 많지 않았다. 옆 좌석에 중학생 나이의 소녀가 스마트 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슬쩍 넘겨다보니 오래된 스타일의 폰이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기스가 심해서 옆에서 보니 무엇을 하는지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떼지 못하고 열중하는 것에 나는 의아했다. 마모가 심한 폰을 들고 재미를 느끼는 소녀는 옆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손놀림이 유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또 앞좌석에 있는 30대 숙녀가 넓은 신형 스마트폰을 들고 눈 돌릴 틈도 없이 손놀림이 바쁘게 돌아갔다. 미소를 띠고 폰을 두들기는 것을 보면 애인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봤다.
차내는 승객이 좌석을 메우고 서있는 사람은 몇 명 정도였다. 그러나 승객들 중에 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마트폰을 열심히 두드리거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화의 순기능은 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기능이 탑재됨으로 전화하는 것을 벗어나 노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잡다한 기능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기능 수를 보니 70여 가지나 되었다. 그러나 내가 사용하는 것은 전화, 메시지, 카카오톡, 카메라, 갤러리, 지하철, 노트, 메일, 녹음, 사전, 클라우드, S플래너 등 12가지 정도의 기능만을 사용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이용하면 많은 정보를 이용하게 된다. 스마트폰 정보는 인간에게 유익한 정보가 얼마든지 있으나 유해한 정보도 많다. 좋은 정보는 필요할 때만 이용하지만 나쁜 정보는 수시로 이용하며 정신을 황폐화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나 좋은 기능보다는 나쁜 기능이 사람을 더 유혹하기 때문에 유년기 청소년들이 염려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가지는 순 기능을 넘어 사람들이 정신건강에 해독이 될 염려가 있으며 폭력적인 놀이 문화와 퇴폐적인 에로문화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작은 컴퓨터 일뿐 아니라 요술 상자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에 취해서 길거리에서 건널목에서 아무데서나 눈만 뜨면 손에서 떠나지 않는 그 요술 상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그래서 그 위력은 대단하며 젊은이들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 살짜리 손녀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 하기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찾아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자제품을 만지는 능력이 70대 할머니보다 잘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한 달이 멀다하고 진화되어지는 실정이며 인간은 인간이 만든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범위가 차츰 확대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자제품의 위력에 모든 현대인들이 휘둘리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번호 하나도 외우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2~30개의 전화번호를 암기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지금은 폰에 저장하는 것을 믿고 전혀 외우지 않는 폐단이 생기고 있다. 또 요즈음은 폰의 카메라 기능이 화소가 높아지면서 소형 촬영기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속도로 변화되어가는 기술속도를 사람이 따라가기가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너무 기계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 기계는 모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사람이 만든 기계는 역시 사람이 조작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기계의 명령에 인간이 움직일 때가 올 것이고 기계로 하여금 지배를 받을 날도 멀지않았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계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인간이 개발한 반도체는 인간의 기억력을 넘어서고 있으며 무인비행기로 전쟁을 치르는 시대가되었으며 무인자동기기는 속출하고 있다. 첨단 기술은 점차 발전할 것이고 보통 사람들은 머리좋은 사람들이 개발한 기계에 매달려 좌왕우왕하게 되어있다.
앞으로 어느 정도의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을 이롭게 하겠지만 성품이나 감정의 황폐화가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 자기 본성을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