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잘난 자식은 부모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리고 인물 좋고 공부 잘하면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자라서 무엇이 될 것인지 모르고 지레짐작으로 대통령감이니 장군감이니 하면서 추겨 세우는 것이 어른들의 기대 칭찬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이가자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 의무를 마치는 등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천차만별의 인생차등이 생기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대통령이니 장군이니 하는 기대는 어디로 가버리고 희망에 미치지 못하는 직업과 인격으로 부모의 실망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아이가 출세를 하여 나라의 큰 일꾼이 되고 유명인사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제자 한분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되어 자식을 좋은 학교를 졸업시켜 미국유학을 보냈다. 미국에서 출세하여 아예 눌러 앉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의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한인회 회장으로 출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딸은 이태리 유학을 해서 그곳에서 대학교수로 임용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하니 자식 얼굴 한번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심심소일로 나에게 와서 그림공부를 했으나 무릎관절이 시원치 않아서 화실에 오지 못한지 1년 쯤 되었다.
화실에 드나들면서 바람도 쏘이고 그림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꼈으나 육체적 노쇠현상으로 인생의 황혼기가 슬프고 한스럽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적조하고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온 소식은 참으로 비참했다. “선생님 나는 요즈음 거울하고 대화를 한답니다. 거울속의 나와 대화를 하면서 한마디 물어보고 스스로 대답하고 지냅니다.” 그 전화를 끝으로 나도 마음이 무거워 소식을 끊고 말았다.
또 한 사람은 자식이 출세하여 어머니를 슬프게 한 이야기가 있다. 동대문시장 근처에 노점상을 하면서 어렵게 자식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자식이 재주가 있어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 부잣집 처녀와 결혼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노점상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어머니를 외면하고 다시는 집에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기가 막혀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해 봤지만 자식 욕 먹일까 하여 참고 살아가는 형편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배신한 자식을 위해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노점상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하니 너무도 기가 막힐 일이다.
10여년쯤 전 어느 노인한분이 지인의 소개로 나의 화실을 찾아왔다. 그림의 거간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신세타령을 들려주었다. 그 사람은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경영하며 부유하게 살았다. 자식을 미국유학을 보내고 아들은 의사가 되어 그곳에서 결혼하여 손자도 낳고 잘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가나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렸으니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여비를 만들어 아들이 있는 미국에 가서 인생말년에 자식하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아들 집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에서 3일이 지나니 며느리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자기는 시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만약 남편이 모신다고하면 이혼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식을 이혼시켜가면서 자식하고 살수가 없어 다시금 눈물을 머금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와서도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에 다니던 절집으로 다니며 걸식을 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지인이 그림거간이라도 해보라고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요즈음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출세한 자식은 남의 자식이고 못난 자식이 자기자식이다.” 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럴 리가 없지만 개중에는 자기가 낳아서 키워주신 부모를 배신하고 자기들만의 행복을 위하여 보금자리를 만드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요즈음은 자식과 같이 살겠다는 사람이 줄어들고 대부분 혼자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식이 부모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부모 품을 떠나면 며느리의 남편이고 손자의 부모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부모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3대를 같이 모시고 사는 것을 큰 행복으로 생각했는데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한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부산에 계시는 누님을 만나고 왔다. 누님은 어느 노인복지시설에 입원해있었다. 만남은 반가웠으나 헤어짐이 마음에 걸렸다. 치매가 있는 누님을 두고 떠나오는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가 이렇게 비참해서야 되겠는가? 암보다도 무서운 것이 치매라는 말도 있으니 참담하기만 하다. 자식들이 무정해서가 아니라 치매라는 병이 무서운 것이다. 누님께서 외롭고 쓸쓸한 병원 생활이지만 별 탈 없이 지내시다가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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