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이 자기 화풍(畵風)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시대조류에 따라서 화풍도 천차만별이 있겠으나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화체(畵体)를 완성하는 것은 작가의 염원이며 숙원이다. 그러나 평생을 연구하고 노력해도 자기 것이라고 내놓을만한 화풍을 만들지 못한 화가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 겸재 정선은 토속적 화체와 실경위주의 필묵법(筆墨法)을 창안하여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겼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1676년 (숙종)때 태어나 1759년 (영조)때까지 활동했다. 84세의 일기로 돌아가기까지 우리나라 화단에 남긴 업적은 대단히 크며 많은 화가들 중에 큰 교훈이 되었다. 당시의 대부분 화가들은 아류화풍을 구사했으나 겸재는 우리나라 경치를 새로운 방법으로 진경(眞景)화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양반출신의 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중인대접을 받는 화원으로 활동하게된 것은 정선의 그림재주가 뛰어나고 인성이 후덕함을 인정하여 김창집(金昌集)이 주선하여 도화서 화원으로 출사하게 된 것이다. 양반가에서 화가로 나온 정선은 가난한 집안 살림살이에서 가족을 건사해야하는 경제문제 때문에 귀천을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홀로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겸재는 특출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예술적 미감천착에 남다른 재질을 발휘하여 나라의 체면을 세우는 큰 업적을 남긴 것이다.
겸재는 조선후기 문화부흥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이며 예술적 실력을 발휘하여 자기위치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성공한 예술가의 한사람이다.
겸제는 영조임금이 아끼는 화가로 승승장구하자 시샘하는 고관들이 임금에게 높은 벼슬을 제수하는 것은 과하다고 주청했다. 그러나 영조는 그림으로 출세를 하였으나 원래 양반가문에서 나왔으며 크나큰 예술적 업적이 인정됨으로서 대우를 하는 것은 마땅하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하였다.
정선은 호를 겸재(謙齋) 자는 원백(元伯)이며 때로는 겸노(謙老), 겸초(兼艸), 난곡(蘭谷) 등의 별호를 쓰기도 했다. 겸재는 어머니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출생지가 어딘지 정확하지도 않으며 사후에 묘소가 어딘지 밝혀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화우(畵友) 조영우(趙榮祐) 제자(弟子) 심사정(沈師正) 같은 훌륭한 주위사람들을 보면 그의 인생여정을 엿볼 수 있다.
초기에 위수로(왕세자를 호위하는 직책)하여 1729년에 한성부주부, 1734년에 정하현감, 화양현감을 거쳐 1740년에는 훈련도감낭청, 1740년 양천현령을 지냈다. 1754년에는 사도시첨정, 1755년에 가선대부 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았다. 그 당시 화가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이다.
겸재는 원래 양반가문이지만 여러 대를 벼슬에 나가지 못하여 한미한 양반이었다. 그러나 그는 특출한 그림재주와 세정에 밝아 높은 벼슬에 오르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그림에서 큰 업적은 그 당시 중국의 아류가 판을 쳤으나 우리자연을 소재로 하는 새로운 화풍을 창안함으로서 화단에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그림을 그림으로서 미래지향적 예술시장에 불을 지른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예술시장에서 당당한 거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금강산을 비롯해서 관동지방의 실경과 한강을 위주로 명승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는 지방 관서에 근무하면서 그린 작품이 많으며 관직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실경을 그림으로서 진경화가로 자리를 굳혔다.
그는 기존의 필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독창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기법 창출에 전념하였다. 인왕제색도를 보면 넓고 웅장한 바위를 큰 붓으로 단숨에 내려치는 장엄한 필법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에 인생을 걸었고 드디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낙원을 건설하여 자기영토를 구축하고 한 인간의 말로를 아름답게 마무리 지은 시대적 거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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